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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에세이

인간 반품 (人間 返品) - [ 바냐 에세이 ]

by 바냐아저씨 2025. 8. 30.
인간 반품 이미지

 
.
 
제가,
 
서울에서,
 
장사하던 시절,
 
 
그 동네에서 근무 중인
 
어떤 공무원 형님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나이,
 
50이 넘었던 그 형님은,
 
자녀가 둘이었던, 돌싱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전처가 키웠고,
 
원룸에서,
 
혼자 지내던 형님은,
 
,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이혼 사유가,
 
그 형님에게,
 
있었던 것은 아닌 걸로압니다만,
 
항상,
 
웃는 얼굴에,
 
서글서글한 매력이 있던 분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그 형님에게,
 
재혼을 강력하게 권유했고,
 
그 당시엔,
 
동남아 여성들과의 결혼이,
 
비일비재하던 때라,
 
그 형님은 고심 끝에,
 
업체를 통해,
 
필리핀 여성과의,
 
국제결혼, 추진하게 됐습니다.
 
 
결국,
 
30살 차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해,
 
막판에,
 
20살 안팎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고,
 
귀국 후에,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
 
그 형님은,
 
자전거광, 이었습니다.
 
 
재혼 전엔,
 
, 자전거, ,
 
, 자전거, ,
 
, 자전거, 잠 이었는데,
 
 
재혼 후엔,
 
, , ,
 
, , ,
 
, , 그리고
 
달콤한 잠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었죠.
 
 
그렇게,
 
신혼의 단꿈이,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날 즈음에,
 
그 형님이,
 
제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얼굴은 상기됐고,
 
숨결은 거칠었으며,
 
어깨는 잔뜩, 굳어있었죠.
 
 
' 이거 봐 동상,
 
나 참, 이게 말이 되는 거여? '
 
 
'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형님? '
 
 
,
 
매장을 정리하다가,
 
몹시 화가 난 채로 등장한,
 
그 형님의 충혈된 눈빛을,
 
천천히 응시했습니다.
 
 
' 아이씨,
 
이런 재수 없을 때가 ! '
 
 
' 왜요, 형님? 무슨 일이에요? '
 
 
' 있잖아,
 
내가 데리고 온 애 말이야. '
 
 
' , 형수님 말씀이세요? '
 
 
' 나 참,
 
형수고 나발이고 말이야.
 
그 애가,
 
으이그...... ! '
 
 
' 대체 무슨 일이신데요, 형님? '
 
 
' 어제 말이야.
 
퇴근 후 밥을 먹는데 말이지.
 
그 애가,
 
밥상에서 김을 집는데,
 
그때 내가 보게 된 거야 ! '
 
 
' 뭘요? 뭘 봤는데요? '
 
 
' 그 애가 손을 뻗는데 말이지.
 
김을 집으려고 말이야.
 
그때 처음으로,
 
그 애가 손을 폈어. '
 
 
'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
 
 
' 걔가 항상,
 
왼손을, 주먹 쥐고 있었거든.
 
나도 어제 보고 깨달았지 뭐야.
 
여하튼,
 
김을 집으려고 손바닥을 폈는데,
 
글쎄 그게 ! '
 
 
' 그게, 뭔데요? '
 
 
' 글쎄,
 
그 애 손가락이 잘려 있는 거야.
 
한 손가락이.
 
내가 하도 놀라서,
 
막 따져물으려니까,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울더라구. '
 
 
' ...... '
 
 
' 나중에 들어보니까,
 
어릴 때,
 
부모님 농사를 돕다가,
 
작두 같은 것에,
 
손가락이 잘렸다더만. '
 
 
' 아이고......
 
그랬군요쯧쯧쯧. '
 
 
'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를 완전히 속였단 말이지.
 
그래서 지금 당장,
 
그 애를 반품하려고 하거든.
 
동생 생각은 어때 ? '
 
 
' 네에? 반품이라고요?? '
 
 
' 그래, 반품.
 
그럼 반품을 해야지,
 
이대로 살 수는 없잖아.

하자가 있으니까. '

 
 
그때까지,
 
,
 
그 형님에게,
 
조금도,
 
나쁜 감정은없었습니다.
 
 
시골 출신이었고,
 
또 순박했던,
 
형님이었죠.
 
 
그러나,
 
,
 
' 인간 반품 ' 이라는 대목에서,
 
제 마음속,
 
발작 버튼, 눌린 거죠.
 
 
' 아니, 형님!
 
그건 말씀이 좀 지나치시죠.
 
불과 일주일 전까지,
 
형수님이 좋아 죽겠다고,
 
그렇게 새신랑처럼 얼굴이 빨갛던 분이,
 
고작 손가락 때문에,
 
뭐라고요?
 
반품이라고요??
 
형님 !
 
인간이 무슨,
 
부러진 가구에요 !
 
반품이 뭡니까 반품이 !!! '
 
 
' ...... '
 
 
이번엔,
 
그 형님이,
 
침묵했습니다.
 
 
잠시 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 형님은,
 
조금씩,
 
얼굴에 희망의 빛이 어리더니,
 
저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어.
 
먼 타국에서 와,
 
나이 많은 나랑 결혼한 것도,
 
그 애 딴에는 억울할 텐데,
 
내가,
 
반품이란 말을 쓴 건,
 
내 잘못이야.
 
내 잘못. '
 
 
그렇게,
 
그 형님은, 제 가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웃으며,
 
제 가게를 찾은 건,
 
아마,
 
한 달 뒤였을 겁니다.
 
 
손가락 사건은,
 
다 잊혀졌고,
 
그 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아주 행복하게,
 
매일 매일,
 
 
 
자전거를, 타신다더군요.
 
 
 
 
 
p.s.
 
.
 
넷플릭스에서,
 
' 돌싱글즈 ' 를 보는데,
 
어느 여성분 한 분이,
 
시댁에서,
 
자신을,
 
친정으로 <반품 >하겠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저는,
 
잊고 있었던,
 
그 형님의 이야기가,
 
기억났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인간에게,
 
 
반품이 뭡니까 반품이.


눈물같은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