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닭을,
못 먹습니다.
어릴 때,
외갓집에서,
저를 졸졸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토종닭에게,
쉬야를 해서,
응징을 했지요.
그랬는데,
이 미친 닭이,
푸드득 푸드득 날아오더니,
제,
급소(?)를, 쪼는 바람에,
' 악 ! '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저는,
닭만 보면,
그것이 살아있는 생물이든,
양념 치킨이든, 프라이드 치킨이든,
삼계탕이든 간에,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제 아내는,
처녀 시절,
그 좋아했던 치킨을,
저와의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뜯지를, 못했지요 ㅜㅜ
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채식주의자라는 건, 아닙니다.
전,
광어회를 좋아하고,
또, 등심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여하튼,
집에서 방송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꼭,
채식주의자 분들의,
어떤 결연하고,
때로는 숭고해 보이는,
< 의지 >를, 보게 되는데,
아......
그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식물이,
무영혼, 무고통이라,
예단했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촌극이라, 하겠습니다.
그럼,
잔혹한,
살생의 육식,
그 대안으로 믿어왔던,
' 채식주의 ' 는, 진정 합당한 것일까요?
먼저,
단테의 ' 신곡 (神曲) ',
지옥 편에,
' 자살자들의 숲 ',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살한 영혼들은,
육체를 되찾지 못한 채,
기괴한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징벌을, 받은 것이지요.
( 징벌천사들이 내리는,
실제 징벌이기도 합니다. )
단테가 실수로,
그 숲,
어떤 나무의 가지를 꺾자,
피해를 입은 나무에서,
신음 소리와 함께, 피가 흐릅니다.
나무가 말하죠.
' 우리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가지가 꺾일 때마다,
팔이 꺾이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
또 힌두교에서는,
' 모든 생명은 아트만( आत्मन् )이 있다. ',
즉,
모든 생명은,
영혼을 지닌다고 보며,
이는 식물에게도 적용되고,
윤회와 업의 고리를 갖는 존재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애니미즘(Animism) 신앙이 있어서,
식물뿐 아니라,
모든 자연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죠.
네.
이런 이야기들은,
제가 바냐 에세이에서 쓴,
' 최악의 지옥 ' 편에서,
아주 극단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럼,
과학적으로는 어떨까요?
1966년에 있었던,
백스터 실험(Cleve Backster)에서는,
식물에 거짓말 탐지기 실험과,
또,
물을 주거나,
불을 붙이려고 할 때,
식물의 전기 반응 변화가, 감지됐죠.
또한,
2019년에 있었던,
텔아비브 대학의 실험은,
식물도 고통을 받으면,
초음파를 방출하며,
줄기를 자르거나 말라 죽게 만들면,
초음파로 ' 비명 ' 같은,
신호가 발생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사회성을 연구했던,
수잔 시마드 교수(캐나다)는,
' 균사 네트워크 ' 로,
(Mycorrhizal Network)
나무끼리,
정보와 양분을 공유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네.
사실,
이런 종교적, 과학적 이야기는,
제 스타일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제가 경험하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바냐 에세이,
두 번째 글,
'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 ' 편에,
저와,
나무의 대화 이야기가,
잠시 언급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영종도에서,
딱 2번,
영종도의 모든 식물에 대한,
축복 기도를,
하늘에 계신 신(神)께,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한 동안은,
영종도 길을,
편안하게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 고맙습니다, 바냐아저씨 ! '
' 고마워요! '
' 감사합니다, 바냐 아찌 ! '
제가 걸었던,
백운산 등산로의 나무들,
송산 등산로의 나무들,
거리의 가로수,
보도블럭,
혹은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난,
어느 민들레마저,
또랑또랑하게,
제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네.
그것은,
목소리.
식물들의, 영혼의 목소리였죠.
p.s.
1.
그래서,
시골 마을 입구에 있는,
아주 오래된 나무를,
베려 할 때,
극히,
조심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2.
이번 이야기의,
바냐 아저씨의 메시지는,
채식주의자를,
식물에 대한 야만인으로,
비난하거나,
위선자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그것이, 시스템이죠.
그래서 우리는,
< 나 > 라는,
보잘 것 없는 생명에게,
자신의 전부인 생명을 바쳐,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그 희생에,
언제든지,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비록,
식물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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