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 크림슨 타이드 ' 는,
최고의 잠수함 영화인가
네.
잠수함 영화의 전당이 있다면,
'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1995)' 는, 그 정중앙에 자리 잡을 자격이
있습니다.
토니 스콧 감독의 손끝에서 완성된
이 작품은, 단순한 군사 스릴러를 넘어 인간 심리의 대립, 권위와 이성의 충돌, 그리고 핵전쟁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유독 빛나는 이유는, 두 주연배우,
진 해크먼과 덴젤 워싱턴의 숨 막히는 대립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기 때문이죠.
토니 스콧의 감각적인 연출,
한스 짐머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
그리고,
물속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압축된 드라마.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크림슨 타이드는,
단연코 잠수함 영화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서스펜스 넘치는 명작으로 남았습니다.
줄거리
러시아에서 군벌 쿠데타가 발생하고, 반군이 핵미사일 발사를 위협하는 상황.
미국 해군의 핵잠수함,
USS 앨라배마호는 반격 가능성을 대비해 출항합니다.
이때 선장은 전통적인 군사주의자 램지(진 해크먼), 부함장은 이성과 절제를 중시하는 헌터(덴젤 워싱턴).
임무 도중,
반군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오고,
동시에 상부로부터의 두 번째 명령 수신 중 통신이 끊깁니다.
첫 번째 명령은 '발사 대기',
두 번째 명령은 불분명.
이때부터 영화는,
하나의 질문만 남습니다.
' 불완전한 명령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인가? '
이에 대한 두 인물의 결단은,
램지는 ' 행동 '으로, 헌터는 ' 재확인 '
쪽으로 굳어집니다.
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잠수함이라는 밀폐된 공간은,
거대한 압력솥처럼 변하고,
두 사람의 충돌은 군사 쿠데타보다
더 위험한 내전을 촉발시킵니다.
< 지금부터 영화의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
진 해크먼 vs 덴젤 워싱턴의 명연기
크림슨 타이드의 진짜 핵폭발은,
잠수함 밖이 아니라,
램지와 헌터의 눈빛 속에서 폭발합니다.
이 두 배우는 각자의 신념과 논리를 무기로 삼아, 마치 바둑의 반집 승부처럼, 팽팽하게 맞붙습니다.
기(起), 불편한 동승
헌터는 램지의 오랜 전통주의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개, 담배, 불명확한 농담.
초반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며 신경전을 벌이죠.
승(承), 통신 두절, 갈등 폭발
미사일 발사 명령과 통신 두절.
여기서 램지는 선장의 권한으로 발사를 준비하지만, 헌터는 상부의 명확한 명령 없이는 안 된다며 명령을 거부합니다.
결국 램지를 해임하고 지휘권을 쥐는 헌터.
전(轉), 반란과 회의
헌터의 결정을 지지하지 않는 일부 장교들의 반란.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덴젤 워싱턴의
표정 연기에서 ‘책임감’과 ‘불안’이 동시에 교차합니다.
결(結), 진실과 존중
결국 명령은,
' 미사일 발사 중지 '였음이 밝혀지고, 헌터의 결정이 옳았음이 입증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인정하며 물러서는
가운데, 해크먼의 마지막 대사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넌 옳았어.
하지만 네 방식도 내 방식만큼 위험할 수 있었지."
이건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권위와 이성이라는 두 축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적 통찰이기도 합니다.
토니 스콧의 디렉팅과 한스 짐머의 음악
Top Gun으로 유명한 토니 스콧 감독은, 이 작품에서 스타일보다는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잠수함이라는 닫힌 공간을,
붉은 조명과 금속의 차가운 질감,
인물 간 거리의 조절로 긴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스 짐머의 음악이
작품성을 더 묵직하게 만들어줍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비트,
음산한 현악, 그리고 웅장한 브라스는 관객을 잠수함 내부의 폐쇄공포로 몰아넣었죠.
이 사운드트랙은 이후,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참고가 될 정도로 혁신적이었습니다.
제작 비화와 에피소드
이 영화의 각본 초안은,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일부 대사 수정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특유의 유머와 날카로운 대사가 중간중간 빛나기도 하죠.
그리고 실제 미 해군은,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문제 삼으며 협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민간 촬영팀과 모형 세트를 활용해
촬영됐습니다.
진 해크먼과 덴젤 워싱턴의 연기 호흡은, 초반엔 긴장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배우 모두 강한 존재감을 가진 성격이라, 실제로도 몇 번의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녹아들었습니다.
흥행과 비평
1995년 개봉 당시,
크림슨 타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5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제작비 약 5천만 달러를 크게 상회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극찬을 받았습니다.
특히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에 ★★★★ 별 네 개 만점을 주며,
"잠수함 영화의 새로운 기준 "
이라고 평했습니다.
또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으며,
영화는 아카데미 음악상과 편집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네.
이상,
크림슨 타이드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밤도,
저 깊고깊고 머나먼,
태평양의 어느 해저에서 들려오는,
잠수함의 소나음을 자장가 삼아,
푹 주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