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생전에,
' 쇼팽 ' 은,
(Fryderyk Franciszek Chopin)
그의,
' 즉흥환상곡 ' 에 대해,
(Fantaisie-Impromptu)
' 출판하지 말고 불태워라. '
그런 유언을 남겼는데,
이,
감정적 표현과,
기술적 완벽함의,
이상적인 균형을 이룬,
피아노 독주곡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걸까요?
그 전에,
쇼팽이,
' 즉흥환상곡 ' 을 숨기려 했던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의,
대표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 즉흥환상곡 ' 이,
베토벤의 소나타,
' 월광 ' 과,
너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즉,
' 모방 ' 으로,
오해를 받을까 염려됐다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연인,
'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
( 프랑스 여성 소설가)
또는,
' 마리아 보진스카 (Maria Wodzińska) ',
이들 연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갈등이 담긴,
' 비밀스런 고백의 곡. '
마치,
연인들에 대한 속마음을 담은,
개인적인 일기 같은 곡이기에,
출판을 원치 않았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여하튼,
쇼팽은,
' 즉흥환상곡 ' 이 세상에 알려지는 걸,
창작자로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 바르샤바 음악학교 ' 의 동문이자,
친구이며 제자인,
' 줄리안 폰타나 (Julian Fontana) ' 에 의해,
' 즉흥환상곡 ' 은,
쇼팽의 사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 인물은,
겉으로는 단순한 조력자처럼 보이지만,
쇼팽의 마지막 음표를,
세상에 전한 사람이며,
비극과 헌신이 뒤섞인,
낭만시대의 그림자 같은 인물입니다.
특히 쇼팽은,
성격이 예민하고,
사회성이 많이 부족했는데,
폰타나는,
그의 일정, 편지, 출판, 계약, 사교 등,
쇼팽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일을 도운,
비서 겸 대리인 역할이었습니다.
쇼팽 시대에 함께 살았던,
동시대인의 어떤 기록을 보면,
' 폰타나는,
쇼팽의 손이 닿지 못한,
세속의 일을 대신했다. '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또 폰타나는,
쇼팽에게,
직접 피아노를 사사받았으며,
그의 작품 해석법과,
페달링을 전수받은,
몇 안 되는 제자 중, 한 명이기도 했죠.
1849년,
쇼팽이 사망하자,
폰타나는,
그의 미공개 원고와 편지,
스케치 등을 정리해서 출판 합니다
바로 이 출판물에서,
' 즉흥환상곡 ' 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거죠.
폰타나는,
' 친구,
특히 위대한 음악가 쇼팽을 배신한,
나쁜 사람. '
그렇게 비판받기도 했지만,
폰타나의 말처럼,
' 쇼팽의 음악은 인류의 것이며,
그의 유언보다 중요하다. '
그러한 믿음으로,
쇼팽을,
배신 아닌 배신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영혼구원 마스터이기에,
이런 애매한 장면이,
몹시 궁금하긴 하네요.
과연,
쇼팽이,
저 세상에서,
사랑하는 친구 폰타나를 만나서,
그를 보고,
욕을 했을지, 고맙다 했을지.
쇼팽 ' 즉흥환상곡 ' - 다닐 트리포노프 연주
p.s.
' 쇼팽 ' 프로필
네.
쇼팽은,
1810년,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 출생이며,
1849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운명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작곡가, 피아니스트이며,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음악만을 작곡,
' 피아노의 시인 '
(The Poet of the Piano)
그렇게 불리기도 했습니다.
감정적 서정성과,
화려한 기교가 특징이며,
폴란드 민족 정서를 섬세하게,
그의 작품에 결합시켰죠.
그의 대표작으로는,
Nocturne in E-flat Major, Op. 9 No.2.
Fantaisie-Impromptu, Op. 66.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Études Op. 10 &Op. 25.
Polonaise in A-flat major, Op. 53 'Heroic'.
Piano Sonata No. 2 in B-flat minor.
(Funeral March)
등이 있습니다.
' 줄리안 폰타나 ' 프로필
1810년,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으로,
쇼팽과는 동갑입니다.
쇼팽과,
' Warsaw Conservatory ' 동문이며,
쇼팽의 평생 친구였습니다.
직업은,
피아니스트, 작곡가, 번역가 였습니다.
그도,
피아노 소품, 변주곡, 실내악 등,
30여 곡을 작곡했으나,
쇼팽처럼,
역사적인 작곡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말년에,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독으로,
1869년 파리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그는,
쇼팽의 묘가 있는,
페르 라셰즈 묘지 근처에서,
살았다고 하니,
쇼팽 사후,
얼마나,
쇼팽이,
사무치도록 그리웠을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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