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하쿠, 그 푸른 용의 정체는? —
신화와 12지신 속 ‘용’의 고증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는 바로 하쿠,
즉 하쿠류(白龍)다.
인간의 모습과 드래곤의 형상을 오가며 치히로를 돕는 그는 사실 일본 전통 신화와 중국 도교 문화의 혼합체 같은 존재다.
일본 신화에서 용(龍)은 주로 물의 신, 혹은 하천을 지키는 수호령으로 등장한다.
하쿠의 정체 역시 ‘니가하야미 코하쿠누시(饒速水琥珀主)’, 즉 ‘고하쿠 강의 정령’이다.
이는 일본 각지에 존재하는 ‘하천 신앙’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강이나 연못, 폭포 등에 신이 깃든다고 믿어왔고, 이곳을 신사(神社)로 만들어 섬기기도 했다.
또한 용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12지신 ' 중 하나로 등장하는 ‘진(辰)’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용이 쥐, 소, 호랑이, 토끼 같은 동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동아시아의 자연 숭배와 상상력이 결합된 상징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넘나드는 초월적 존재로서 용이 선택된 것이다.
중국 고대 신화서 ' 산해경 ' 에서는
용이 오행을 다스리며 비를 부르고 하늘을 나는 존재로 묘사된다.
하쿠 또한 공중을 날고,
물과 깊은 관련을 가지며,
결국엔 ‘이름’을 되찾아 정체성을 회복한다.
이 역시 동양에서 ‘이름’이 곧 존재의 본질이라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2. 신령들의 대욕탕, 발상의 비밀 —
일본 신화와 온천 문화의 융합
센과 치히로에서 또 하나 독특한 장면은,
신령들이 온천에 모여 피로를 푸는 ‘유바바의 목욕탕’이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상상이 가능했을까? 그 뿌리는 일본의 ' 온천 문화와 다신 신앙(多神信仰) ' 에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온천이 발달한 나라다. 화산 지형 덕분에 전국에 온천이 분포해 있고, 고대부터 ‘온천에 몸을 담그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온천은 정화, 치유, 그리고 신이 깃드는 장소로 여겨졌다.
여기에 ' 신토(神道)'의 영향도 크다. 일본의 토착 종교인 신토는 수천 개의 신(神)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 신들은 인간처럼 기쁨과 분노, 피로를 느낀다고 여겨졌기에, 신이 쉬러 오는 ‘목욕탕’이라는 발상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 인터뷰에서
“도시가 자연을 잊어가는 시대에,
인간과 신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그리고 싶었다. ” 고 말했다.
유바바의 온천은 인간의 공간이 아닌, 신과 자연, 정령이 공존하는 중간계로 설정된 것이다.
또한 신들이 사용하는 욕실은 단순히 씻는 공간이 아니라, 속세의 때를 벗고 정화되는 의식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는 실제 신사에서 행하는 ‘미소기(禊)’ — 몸을 씻어 죄를 없애는 의식 — 와도 연결된다.
3. 현실 너머의 은유 —
‘센과 치히로’가 말하는 세계의 질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겉으로 보면 환상 모험극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강한 은유와 철학적 메시지가 깔려 있다.
이름을 빼앗긴 치히로,
물 속에서 정체를 잃은 하쿠,
끝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가오나시,
이 모든 캐릭터는 현대 사회와 인간 내면의 문제를 형상화한 존재들이다.
하쿠는 이름을 잃고 유바바의 종이 되었지만, 자신의 정체를 깨달음으로써 해방된다.
이는 정체성과 기억의 중요성을 말한다.
또한 신령들이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장면은, 인간이 끊임없이 자연을 착취해 피로하게 만든 세계에서 자연 신마저도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반전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신화와 민속, 현대 사회 문제까지 아우르며 ‘어른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아이가 살아남는 법’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야자키 감독은,
“센은 우리가 잃어버린 감수성과 순수성의 상징 ” 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무리하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 신화와 전통, 인간과 자연, 존재와 소멸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하쿠라는 용은 단지 멋진 캐릭터가 아니라, 동양의 고대적 상징이자 자연과 인간의 연결 고리다.
그리고 신들이 목욕하는 온천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신성함과 정화의 공간이다.
환상 속 세계가 이토록 현실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